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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람동(藍洞) 마을 소식’을 만들고 있는 박상길 이장. 그는 2025년 7월부터 매달 한 차례 소식지를 발행하고 있다.
ⓒ 최미향
"반장님을 통해 집마다 소식지를 전달했는데, 한 주민이 '이런 걸 뭐 하러 하느냐'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직 주민들로부터 특별한 반응은 없지만, 반응이 올 때까지 계속해 보려고 합니다."
온도계가 40도를 훌쩍 넘긴 지난 2일, 전국이 거대한 찜통으로 변했다. 경남 양산에서는 낮 최고기온이 42.5도까지 치솟았다. 같은 날, 충남 서산시 성연면 일람3리에도 매서운 햇볕이 내리꽂혔다.
이날 자택에서 박상길 이장을 만났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폭염에 달아오른 몸을 식혀줬다. 그는 농사를 짓는 농부이자 마을의 일상을 기록하는 기자다. 스마트폰으로 주민들의 모습을 촬영하고, 마을회관 컴퓨터 앞에 앉아 기사를 쓴다. 그렇게 매달 한 차례 '람동(藍洞) 마을 소식'마을소식'을 만들어 주민들의 집마다 전하고 있다.
그의 기록은 일람3리에만 머물지 않는다. 올해 상반기에는 마을기자 활동에 도전하기 위해 관련 교육을 받았다. 현재는 서산시 마을기자로 활동하며 마을 곳곳의 사람과 현장을 취재하고, 서산의 소식과 매력을 알리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박상길 이장이 만드는 소식지의 이름은 <람동(藍洞) 마을 소식>이다. 2025년 7월 창간해 2026년 8월 현재 제14호까지 발행했다.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이어온 기록이다.
그가 만드는 소식지는 앞뒷면을 빼곡히 채운다. 앞면에는 절기와 농사 정보, 마을 교육과 행정 소식이 담기고, 뒷면에는 주민들의 일상과 경로 행사, 마을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일들이 사진과 함께 실린다. 한 장의 소식지 안에 일람3리의 한 달이 고스란히 담기는 셈이다.
▲ 2026년 8월 1일 발행된 ‘람동(藍洞) 마을 소식’ 제14호. 왼쪽은 앞면, 오른쪽은 뒷면이다. 절기와 농사 정보부터 주민들의 일상과 마을 행사까지 일람3리의 한 달이 담겨 있다.
ⓒ 최미향
소식지에 실을 내용은 한 달 동안 차곡차곡 모은다. 마을에서 행사가 열리거나 기록할 만한 일이 생기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내용을 메모해 둔다. 농사 정보와 월중 행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자료를 찾는다. 월말이 되면 마을회관 컴퓨터 앞에 앉아 그동안 모은 사진과 내용을 기사로 정리한다.
퇴임 후 고향마을로, 이장에서 마을 기록자로
박상길 이장은 2008년 2월 28일 대산읍 소재 명지초등학교 교감으로 정년퇴임했다. 그는 "선후배들이 교장이라고 명예롭게 불러줬다"며 웃었다.
퇴임 후 부모님의 유산이 남아 있는 일람3리로 들어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일을 거들며 마을살이에 참여하다가 2013년에는 이장으로 선출됐다.
이장 일을 하면서 그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고민이 자리 잡았다. 마을의 정체성을 세우고, 주민들이 함께 기억할 수 있는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마을 일을 하다 보니 우리 마을의 정체성을 확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2022년 선행사업으로 마을 이야기를 담은 책자 '즐거운 람동 나들이'를 펴냈어요."
책 한 권을 내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지속적인 마을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민들 사이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지역 활력센터가 주관한 컴퓨터 교육을 받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렇게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2025년 7월, '람동(藍洞) 마을 소식' 창간호가 세상에 나왔다.
"반응이 올 때까지 계속하겠습니다"
처음부터 주민들의 관심과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박상길 이장은 소식지를 인쇄한 뒤 마을 반장을 통해 각 가정의 우편함에 전달한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주민이 "이런 것을 뭐 하러 하느냐"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처음 하는 일이니까 주민들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어요. 처음에는 반장님이 소식지 전달하는 일을 귀찮아하시는 건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주민들의 반응이 올 때까지 계속하려고 합니다."
서운한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소식지를 받아 들자마자 펼쳐보며 다음 소식을 궁금해하는 주민도 있지만, 아직 직접적으로 고맙다거나 잘 보고 있다는 말을 건네는 주민은 많지 않다.
대신 마을 밖에서 응원이 이어졌다. 창간호와 창간 1주년 소식이 지역 언론에 소개됐고, 서산시활력지원센터에서도 격려를 보내왔다. 충남 마을만들기 관련 연말 보고서에도 람동(藍洞) 마을 소식이 소개됐다.
그는 "그런 관심과 격려가 고마웠다"고 말했다.
소식지 제작은 그가 혼자 담당한다.
월말이 되면 그동안 모아둔 사진과 내용을 마을회관 컴퓨터로 정리한다. 편집을 마친 파일은 USB에 담아 면사무소로 가져간다. 면사무소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인쇄한 뒤, 다시 마을로 가지고 와 봉투마다 주민의 이름을 적어 배포한다.
크고 거창한 시설은 없지만 스마트폰과 마을회관 컴퓨터, USB 하나가 마을의 한 달을 기록하는 편집실이자 인쇄소 역할을 하는 셈이다.
교직 생활 중 취득한 워드프로세서 자격증도 뜻밖의 도움이 됐다.
"교직에 있을 때 승진 。수를 받으려고 워드프로세서 3급 자격증을 땄습니다. 그때 배운 것이 지금 기사를 입력하고 편집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 최미향
개인의 치부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먼저
박상길 이장이 소식지를 만들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은 '공공의 이익'이다.
매달 그 시기의 절기와 주요 행사를 소개하고, 마을에서 일어난 일은 가능한 한 빠짐없이 기록한다. 다만 개인의 이익을 위한 내용이나 누군가의 잘못과 치부를 드러내는 기사는 싣지 않는다.
"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전하되,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에 두고 기사를 작성합니다."
지금까지 만든 소식지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는 마을 이름의 유래를 정리한 이야기다. 마을을 위해 오랫동안 일한 주민이 세상을 떠났을 때, 고인의 삶과 미담을 기록한 기사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사라질 수 있는 마을의 기억을 글로 남긴다는 。에서 그에게 소식지는 단순한 안내문이 아니다.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마을의 시간을 모아두는 역사책에 가깝다.
"새로운 역사를 써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어렵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새로운 역사를 써간다는 뿌듯함이 쌓여가는 재미가 있어요."
오늘 주민들이 함께한 행사도, 농사철의 풍경도, 마을을 위해 애쓴 한 사람의 이야기도 기록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잊힌다. 그가 주민들의 무관심 속에서도 소식지 발행을 멈추지 않는 이유다.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거창한 목표 대신 '계속 기록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현재의 일이 내일이면 과거의 역사가 됩니다. 마을의 역사가 계속 쌓여가고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마을에서 일어나는 사실을 기록으로 이어가겠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걸 뭐 하러 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한 달에 한 장씩 쌓이는 '람동(藍洞) 마을 소식'은 이미 한 마을의 역사가 되고 있다. 박상길 이장이 오늘 적어놓은 작은 기록은 훗날 누군가에게 일람3리의 사람들과 삶을 보여주는 소중한 증언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도청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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