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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년 전 인물인 유순(1441~1517)은 “평소 엄청나게 좋아하는 산갓김치를 매번 어머니께서 담가 보내주신다”고 전했다. 정성껏 김치를 담가 자식들에게 보내는 관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국립민속박물관 자료 바탕 인공지능 활용 그림
‘청국장인가 메주인가.’ 국립중앙박물관이 열고 있는 ‘우리들의 밥상’ 특별전(~10월25일)에서 필자의 눈을 사로잡은 유물이 둘 있다. 하나는 3~5세기 불탄 콩덩어리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젓갈을 사용한 김치 담그는 법이 담긴 가장 오래된 조리서인 <주초침저방>(16세기)이다. 둘 다 K푸드 중 K푸드라 할 수 있는 발효 음식의 역사가 얼마나 뿌리 깊은 지를 보여준다.
그 중 2012~2013년 광주 용산동에서 확인된 콩덩어리가 특히 흥미롭다. 낱알이 아니라 덩어리 또는 반죽 형태의 콩 탄화물이 확인되었다. 비단 용산동뿐이 아니다. 장흥 오산 및 강정·홍천 성산리·춘천 율문리 등 강원·전라도의 3~5세기 유적에서도 그와 비슷한 덩어리 혹은 반죽 형태의 콩덩어리가 보고되었다.
이것은 콩 발효 식품의 등장과 연결 지을 수 있다. 삶은 콩을 찧어 덩어리로 빚은 게 메주다. 이것을 자연 발효 시켜 소금물에 담가 숙성시키면 우러난 액체는 간장이 되고 남은 건더기는 된장이 된다. 메줏가루에 고춧가루, 찹쌀가루를 섞으면 고추장이 된다.
(16세기). 불탄 콩덩어리는 메주 혹은 청국장일 가능성이 있다. 또한 16세기 조리서인 에는 곤쟁이젓갈김치 등 김치 요리법이 적혀있다."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7/31/weeklykh/11061yuzb.jpg" data-org-width="1200" dmcf-mid="4akerzu5Cy"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7/31/weeklykh/11061yuzb.jpg" width="658">
발효식품의 전통을 증명해줄 3~5세기 불탄 콩덩어리와 가장 오래된 김치 조리서인 <주초침저방>(16세기). 불탄 콩덩어리는 메주 혹은 청국장일 가능성이 있다. 또한 16세기 조리서인 <주초침저방>에는 곤쟁이젓갈김치 등 김치 요리법이 적혀있다.
용산동 출토 콩덩어리 역시 메주가 아닐까. 메주나 된장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는 콩(대두)·소금·누룩이다. 그러나 출토된 콩덩어리에서 누룩(발효제)에 쓰인 메주 곰팡이를 확인하기 어렵다. 곰팡이가 탄화 과정에서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출토된 콩덩어리가 잘 반죽이 되어 성형된 모습으로 보관된 것으로 보아 메주와 가장 흡사하다.
그런데 만약 탄화물 내에서 콩의 밀집도가 높은 덩어리라면 청국장으로도 분류될 수 있다. 밀도가 낮다면 메주에 해당하고…. 이 시기, 즉 3~5세기가 되면 식재료를 삶고 찌는데 사용하는 항아리와 시루, 깊은 바리 등이 널리 쓰인다. 그러니 이 무렵이면 콩으로 메주를 쑤고, 이를 이용해서 된장·간장 등 콩 발효식품을 만드는 장문화가 발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혼수품에 속한 메주와 젓갈
그것을 가늠할 수 있는 문헌 자료가 있다. <양서> <남사(南史)> ‘열전 고구려’전은 “고구려 사람들은 깨끗하고 탐욕이 없으며 발효음식을 잘 만든다(善藏釀)”고 했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그 사실을 깔끔하게 증명해준다. 408년(광개토왕 18)에 유주자사를 지낸 진(鎭)의 무덤인 덕흥리 고분에 흥미로운 묵서가 쓰여 있다. “…무덤을 만드는데 전력을 다했으니 날마다 소와 양을 잡고, 술과 고기 쌀은 다 먹지 못할 정도…아침에 먹을 소금(鹽)과 시(시·장)을 충분히 마련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시(시)’는 ‘시장(시醬)’으로 해석된다.(<급취편>·기원전 1세기 편찬된 자전) 수말 당초의 학자 안사고(581~645)는 “시장의 주된 원료는 두장(豆醬·콩장)”이라는 주를 달았다.
그러니까 덕흥리 고분의 주인공이 죽었을 때 무덤을 조성한 이들을 술과 고기, 그리고 소금과 콩으로 만든 장 등으로 융숭하게 대접했다는 것이다. 고구려인들이 항아리를 이용한 식품 발효와 저장에 능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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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뿐이 아니다. <삼국사기>는 683년 2월 신문왕(재위 681~692)이 일길찬(7등) 김흠운(?~655)의 딸을 부인으로 맞으면서 보낸 예단을 소개했다. “왕이 보낸 예물이 비단 15수레, 쌀·술·기름·장(醬)·메주·포·젓갈(醯) 등이 135수레, 벼 150수레에 달했다.”(본기·신문왕‘) 이중 포(脯)가 고기나 생선을 말린 건조 음식이었다면 간장·된장·젓갈(식해) 등은 절임 및 발효 음식이었다.
408년(광개토왕 18)에 유주자사를 지낸 진(鎭)의 무덤인 덕흥리 고분 벽화에 ‘ 금(鹽)과 시(?·콩으로 만든 장)’ 이야기가 나와 있다. 이기환 제공
이중 ‘절임’ 및 ‘발효’는 식재료를 소금이나 당, 식초, 혹은 기타 용액에 담가 오래 저장하는 방식이다. ‘소금 절임’, 즉 ‘염장’의 예를 들어보자. 음식은 미생물의 번식으로 부패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미생물은 높은 염도에서 살 수 없다. 식재료에 소금을 뿌리면, 표면의 높은 염분이 내부로 침투하면서 그 압력(삼투압)에 의해 수분이 빠져나오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온도, 영양원 같은 각종 미생물의 활동 터전이 사라져 부패가 방지된다.
또 하나의 예인 ‘당 절임’도 같은 원리다. 삼투압과 더불어 높은 당 농도가 미생물의 생장을 억제하는 원리를 이용한다.
신라 신문왕은 683년 일길찬 김흠운의 딸을 부인으로 맞으면서 비단 15수레, 쌀·술·기름·장(醬)·메주·포·젓갈(醯) 등이 135수레, 벼 150수레 등을 혼수로 보냈다. 이기환 제공
과일을 꿀이나 조청에 재워 두는 방식은 단맛을 더하면서도 장기 보관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육류나 어패류를 소금에 절이면 젓갈이 된다. 예컨대 경주 월지 등에서는 노루와 멧돼지, 가오리를 젓갈로 담가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리하자면 발효 음식은 장뿐만이 아니다. 소금과 함께 삭힌 식재료는 젓갈이 되었고, 그 젓갈은 훗날 채소를 만나 김치에 깊은 맛을 더했다. 결국 장-젓갈-김치는 저마다 독립된 음식이지만 서로를 완성했고 한국인의 밥상을 더욱 다양하게 만들었다.
경주 월지 등에서는 노루와 멧돼지, 가오리를 젓갈로 담가 먹었던 증거자료가 보인다. 월지에서 육상 및 해상 동물을 젓갈로 만들어 먹었음을 알려주는 명문 목간이 여럿 발견된다. 이기환 제공
김치 먹고 진저리 친 공자
그런데 ‘김치의 원형=절임 채소’라면 김치의 원조는 중국이라 할 수 있다. 기원전 6~5세기 인물인 공자가 김치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으니까…. “주나라 문왕(기원전 1152~1056)이 창포저를 매우 좋아했다. 그 말을 들은 공자는 얼굴을 찌푸려가며 (창포저를) 먹었는데 3년이 지난 후에야 익숙해졌다.”(<여씨춘추> ‘우합’) ‘창포저’는 ‘창포라는 식물을 절인 김치(菹)’를 가리킨다. 빨간 고추와 젓갈에 버무린 요즘의 배추김치를 연상하면 안된다.
는 “공자가 주 문왕이 절임채소인 창포저를 즐겨먹었다는 고사를 읽오 얼굴을 찌푸려가며 따라 먹었다”고 했다. 는 “공자는 3년이 지나서야 김치에 적응했다”고 전했다. 인공지능 활용 그림"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7/31/weeklykh/17943axxq.png" data-org-width="1003" dmcf-mid="QJX9LXGhyl"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7/31/weeklykh/17943axxq.png" width="658">
공자가 김치를 처음 먹었다는 사료가 보인다. <여씨춘추>는 “공자가 주 문왕이 절임채소인 창포저를 즐겨먹었다는 고사를 읽오 얼굴을 찌푸려가며 따라 먹었다”고 했다. <여씨춘추>는 “공자는 3년이 지나서야 김치에 적응했다”고 전했다. 인공지능 활용 그림
그렇다면 공자는 왜 얼굴을 찌푸려가며 김치를 먹었을까. 주 문왕을 ‘성군의 표상’으로 추앙한 공자는 “옛날 문왕이 창포저를 좋아했다”(<한비자> ‘세난’)는 고사를 듣고는 ‘따라쟁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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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공자는 왜 창포저의 맛에 적응하느라 3년이나 투자했을까. 이유가 있었다.
중국에서 채소절임(김치)의 통칭인 저(菹)는 제사음식의 의미가 강했다. 즉 <시경>에 “…오이를 벗겨 저채(김치)로 만들어 조상에게 바친다”는 내용이 있다. 이를 두고 전한 시기에 편찬된 백과사전 <석명>은 “저(菹)는…발효시켜서(釀) 차지도 덥지도 않은 곳에 두어 물러지지 않게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주문왕-공자가 먹은 중국식 절임채소는 우리네 김치와 완전히 다른 길을 걷는다.
즉 중국인들은 강한 신맛을 내는 초산의 발효에 기초한 채소절임을 좋아했다. ‘빠르고 확실한 부패 방지’에 초。을 맞춰 식초 등을 부어 발효시켰다. 이 경우 산도(pH)가 즉시 떨어져 잡균이 아예 자라지 못한다. 유익한 유산균 역시 제대로 자랄 수 없다. 게다가 초산은 젖산에 비해 강한 신맛을 지닌다. 국물로도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공자가 창포저 맛에 진저리를 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식초 대신 소금과 장만을 활용하여 유산균을 자연발생시키는 방안을 채택했다. 젖산은 당분을 분해하는 젖산균에 의해 만들어진다. 소금에 적절히 절여진 채소에서는 오직 젖산균(유산균)만이 살아남아 폭발적으로 증식한다. 유산균이 채소의 당분을 먹고 젖산을 뿜어내면서 은은하고 청량한 신맛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염도를 낮추고, 보존성을 높이는 향신재료의 유입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면서 훗날 고추와 같은 매혹적인 외래종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우리만의 김치문화가 확립됐다.
한국의 경우 소금과 장만을 활용하여 유산균을 자연 발생 시켰다. 소금에 절인 채소에서는 오직 젖산균(유산균)만이 살아남아 폭발적으로 증식한다. 유산균은 채소의 당분을 먹고 젖산을 뿜어내면서 청량한 신맛을 만들어낸다. 이기환 제공
딤채-침채-김치
김치류를 가리키는 용어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용례는 한자어인 저(菹·김치)였다. 그러나 고려말부터 ‘침채(沈菜)’라는 다른 단어가 등장한다. 목은 이색(1328~1396)의 시 중에 “유구(1335~1398)가 우엉과 파와 무를 섞어 담근 침채장을 보내다”는 구절이 보인다. 조선시대 들어 ‘침채’는 ‘팀채’로 발음되었는데, 이것이 딤채-짐채를 거쳐 지금의 김치로 변한 게 아니냐는 게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1527년(중종 22년) 최세진의 한자 학습서인 <훈몽자회>는 한자어 ‘김치 저’(菹)를 ‘딤채’라 소개한 바 있다. 그러나 원래 ‘딤채’는 고유 한국어였으며, 이것을 한자어의 음과 뜻을 빌려 ‘침채(沈菜)’라 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니까 한자어인 ‘침채’가 김치라는 우리말로 변한 건지, 아니면 원래 존재했던 고유 한국어 ‘딤채’가 한자어인 ‘침채’로 표기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전통적인 김장문화와 관련된 문헌기록은 고려 문인 이규보의 시에 처음 등장한다. 이어 여말선초 문인 학자인 권근도 김장김치로 겨울을 난다고 썼다. 이기환 제공
그렇다면 김치를 담가놓고 겨울철 내내 먹는 김장문화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삼국시대 혹은 통일신라 시대부터’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러나 공식 기록은 고려 문인 이규보(1168~1241)의 시(‘가포육영·家圃六詠’)에서 처음 보인다. “(제철무에) 장을 곁들이면 한여름에 먹기 좋고 소금에 절이면 긴 겨울을 넘긴다.”(<동국이상국집>)
여말선초의 문신학자인 권근(1352~1409)의 ‘김장(蓄菜)’이라는 시에도 등장한다.(<양촌집>) “시월이라 거센 바람 새벽 서리 내리니, 울에 가꾼 채소 거두어들였네. 맛있게 김치 담가 겨울에 대비하니 진수성찬 없어도 입맛 절로 나네.”
조선 중후기 인물인 조찬한과 김수증은 “때가 다급해지니 씻어둔 순무채로 김장김치 만든다”느니, “집마다 김장은 연중행사, 가을이 깊어 무를 밭에서 캔다”고 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자료
조선시대 들어서 김장 이야기가 계속 등장한다. 조선 중후기 인물인 조찬한(1572~1631)과 김수증(1624~1701)의 시를 보라. “때가 다급해지니 씻어둔 순무채로 겨울 지낼 김장김치 만들어서 온다.”(조찬한의 <현주집>) “집집마다 김장은 연중행사, 가을이 깊어 무를 밭에서 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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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증의 <곡운집>) 즉 해마다 음력 10월이면 집집마다 김장을 하며(권근·김수증)이며, 김장할 시기를 넘길까 봐 걱정하고(조찬한) 진수성찬 없이도 김장김치(무)만 있으면(권근) 기나긴 겨울을 지낼 수 있다(이규보)는 것이다.
은 광해군에게 ‘김치’를 뇌물로 올려 정승이 된 자의 일화를 전한다. 즉 “무신년(1608년) 이후 잡채상서(雜菜尙書)니 침채정승(沈菜政丞)이니 하는 말들이 나돌았다. 잡채나 침채를 상납해서 총애를 얻었기 때문이다.”라 했다. 여기서 침채는 김치를 가리킨다. 인공지능 활용 그림"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7/31/weeklykh/24108cpua.png" data-org-width="1200" dmcf-mid="Y1OMDupXCO"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7/31/weeklykh/24108cpua.png" width="658">
조선 중기의 문신인 신흠(1566~1628)의 <상촌집>은 광해군에게 ‘김치’를 뇌물로 올려 정승이 된 자의 일화를 전한다. 즉 “무신년(1608년) 이후 잡채상서(雜菜尙書)니 침채정승(沈菜政丞)이니 하는 말들이 나돌았다. 잡채나 침채를 상납해서 총애를 얻었기 때문이다.”라 했다. 여기서 침채는 김치를 가리킨다. 인공지능 활용 그림
그런데 조선시대 초·중기까지 옛 선현의 시를 가만히 살펴보면 김장김치에 ‘배추’가 잘 보이지 않는다. 앞서 인용한 선현의 시를 보면 주로 오이와 무, 가지 등이 김치의 재료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실학자 이덕무(1741~1793)도 “무청, 순무, 나복(무의 일종), 가지, 오이 등으로 모두 침저(김치)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청장관전서>)고 했다. 이 밖에도 고사리싹과, 생강 뿌리, 두릅, 전복, 상추, 콩나물 등을 이용한 다양한 김치가 존재했다.
잡채상서와 침채정승
김치를 뇌물로 주고 정승이 된 이도 있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신흠(1566~1628)의 <상촌집>에 나온 얘기다. “무신년(1608년) 이후 잡채상서(雜菜尙書)니 침채정승(沈菜政丞)이니 하는 말들이 나돌았다. 잡채나 침채를 상납해서 총애를 얻었기 때문이다.” 광해군에게 채소 모둠 음식인 잡채와 침채, 즉 김치를 뇌물로 상납해서 장관(상서) 혹은 재상이 되었다는 얘기다. 김치가 얼마나 귀한 대접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웃지 못할 이야기도 나왔다. 조선 전기 서거정(1420~1488)의 글에는 본부인을 ‘흰떡’에, 여자 종을 떡에 곁들인 ‘신김치’로 비유하는 ‘아재개그’가 보인다. 즉 서거정은 ‘묵은 김치’를 강희맹(1424~1483)에게 보내며 알쏭달쏭한 시 한 수를 곁들인다.(<사가집>) “늙은 아내가 먹으라고 권하는 이 묵은 김치를 자네에게 보내네. 원래 흰떡과 묵은 김치는 미혹되는 법이네(白餠黃菜故應迷).”
그런데 서거정이 이 시의 뒤에 달아놓은 각주가 요절복통이다. “한 늙은이가 계집종의 방에 쳐들어갔다네. 계집종은 ‘마님의 부드러운 살결이 흰떡 같은데, 어찌 이 추악한 계집종을 훔치려 하느냐’고 물었다네. 그러자 늙은이는 ‘원래 흰떡(白餠)에 묵은 김치(黃菜)를 곁들이면 더욱더 좋은 것’이라고 했다네.” 서거정은 이것도 농담이랍시고 “그래서 세간에서는 계집종을 ‘묵은 김치’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요즘 같으면 뼈도 못추릴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은 “무와 배추로 김치를 만들어 양지바른 곳에 묻는다”고 전했다. 인공지능 활용 그림"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7/31/weeklykh/27278zxol.png" data-org-width="1108" dmcf-mid="HKLzeyvmTm"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7/31/weeklykh/27278zxol.png" width="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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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인물인 김수증의 문집(<곡운집>)은 “무와 배추로 김치를 만들어 양지바른 곳에 묻는다”고 전했다. 인공지능 활용 그림
배추가 김치의 재료가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첫 공식기록은 17세기 인물인 김수증(1624~1701)의 문집(<곡운집>)에서 발견된다. “무와 배추로 김치를 만들어 양지바른 곳에 묻는다”는 내용이다. 그러다 1830~60년대 속이 꽉 찬 결구성 포합형 배추가 김치용으로 등장한다.
조선 후기 문신 심상규(1766~1838)의 시(‘잡영추고’)에 ‘희고 연하고 살찐 배추’가 등장한다. “가을배추 살쪄 희고 연한 것이 비계같고…주름진 금색 넓은 잎 흐드러진 은색 줄기….”(<두실존고>) 한글조리서인 <언문후생록>(19세기 말)에서는 ‘석박김치 담그는 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조기젓국, 조기, 낙지, 소라, 생굴, 전복, 생강, 마늘, 실고추, 청각 등을 잘게 썰어 통배추잎 속에 겹겹이 넣고 갓을 양념으로 넣어 담그라.”
)라고 했다. 인공지능활용 그림"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7/31/weeklykh/29142ryop.png" data-org-width="1200" dmcf-mid="Xq7DHMQ9Wr"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7/31/weeklykh/29142ryop.png" width="658">
18~19세기 인물인 심상규의 시에 ‘희고 연하고 살찐 배추’가 등장해요. 가을배추 살쪄 희고 연한 것이 비계같고…주름진 금색 넓은 잎 흐드러진 은색 줄기 ….”(<두실존고>)라고 했다. 인공지능활용 그림
조선인을 사로잡은 고추
김치에 양념 고추는 언제부터 넣었을까. 남미 원산지인 고추가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전후’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중 김치에 고추를 이용한 최초의 기록은 17~18세기 인물인 이서우(1633~1709년)의 시(‘영채·영菜)’다. “고추가 빨갛게 익으면 그 매운맛은 산초나 생강도 뒤처질 정도라네. 들판의 채소…고추에게 의지해 한 번에 평안히 가라앉히노라.”(<송파집>)
김치에 고추를 넣었다는 기록은 17세기 인물인 이서우의 시에 등장한다. “고추를 항아리 속 채소와 섞으니 김치는 맛이 있다.”는 구절이 그것이다. 인공지능 활용 그림
이서우의 다른 시(‘끽채·喫菜)’에도 “고추를 항아리 속 채소와 섞으니 김치는 맛이 있다”(<송파집>)는 구절이 나온다. 비슷한 시기 문인인 김창업(1658~1721)의 시에도 고추가 김치의 재료로 사용된 내용이 담겨 있다.(<노가재집> ‘야초’) “고추가 울타리에 나서 떨어졌는데, 열매 또한 향기롭네. 김치에 넣으니 부드럽고 맛은 시원해지네. <식경>에 없는 게 원망스럽네.” 김창업의 언급처럼 고추는 동양의 음식경전인 <식경>에 등장하지 않은 작물이다. 원산지가 남미였으니 당연했다. 그런데 그런 외래종이 조선인의 입맛을 단숨에 ‘휩쓸어 버렸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중국의 음식 경전)에 없는 게 원망스럽다”고 했다. 이기환 제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7/31/weeklykh/32533cnui.jpg" data-org-width="1200" dmcf-mid="57bOtid8SD"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7/31/weeklykh/32533cnui.jpg" width="658">
김창업(1658~1721)의 시에도 고추가 김치의 재료로 사용된 내용이 담겨 있다. “고추를 넣어 김치를 담그면 맛이 부드럽고 시원해진다”면서 “이것이 <식경>(중국의 음식 경전)에 없는 게 원망스럽다”고 했다. 이기환 제공
일본에 역수출된 고추 음식
조선의 문인 김려(1766~1821)는 “고추가 외래종인데도, 어느새 조선인이 가장 사랑하는 품종으로 거듭났다”고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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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고추는 사철에 이바지하고 이로움이 푸성귀 중 으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한 품종이니(東俗盛種) 이것이 왜채인지 의심스럽다(疑是倭菜)”(<담정유고>)고 감탄했다.
이규경(1788~?)의 <오주연문장전산고>는 한술 더 뜬다. “고추의 연한줄기와 잎으로 김치를 만들면 맛 좋다. 푸르고 어린 열매를 속을 제거하고 저민고기로 채워 달인 청장에 넣으면 맛있는 반찬이 된다. 가루로 만들어 장을 담그면 일명 초장이다. 순창 및 천안의 것은 으뜸이다. 그 열매를 겨울에 액을 짜면 채소가 맑고 담백해진다. 근간에 우리나라 고추는 왜관에서 상품으로 거래되는데, 그 이익이 쏠쏠하다.”
이규경은 “임진왜란 때 들어온 고추가 .. 유행해서 하루라도 먹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조선인들은 고추에 빠르게 중독되었다”라고 전했다. 내용 중 일본에서 들어온 고추가 토착화에 성공해서 다시 왜관을 통해 역수출되고 있다는 대목이 특기할만한 일이다.
18~19세기 문인 김려는 “고추가 외래종인데도, 어느새 조선인이 가장 사랑하는 품종으로 거듭났다”고 증언하고 있다. 18~19세기 인물인 이규경은 “임진왜란 때 들어온 고추가 조선인들에게 빠르게 중독되었다.”면서 “근간에 우리 고추는 왜관에서 상품으로 거래되는데, 그 이익이 쏠쏠하다”고 했다. 이기환 제공
조선인의 마지막 자존심
중국에서는 조미료나 혹은 제사상에만 올려졌던 김치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모든 계층에서 사랑받던 음식이었다. 생육신 중 한 사람인 김시습(1435~1495)은 “쟁반에 오직 김치만 있고 상위엔 소금만 올려놓았네…젓가락 끝이 매우 청렴하네”(<매월당시집> ‘명주일록’)라고 읊었다.
또 조선 중기의 시인인 권필(1569~1612)은 “가난한 선비의 반찬은 김치로 충분하다”고 했다.(<석주별집>) 그뿐인가. 찢어지게 빈한한 선비의 집을 표현할 때는 ‘집에 장항아리와 김칫독만 있었다.’(박윤원의 <근재집>) ‘부엌 시렁에 얹어둔 것은 김치밖에 없었다.’(홍언필의 <묵재집>)는 따위의 표현이 등장했다. 거꾸로 말하면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김치와 김칫독은 있었다는 것이었다. 김치는 조선인의 삶에서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0월25일까지 K 푸드의 뿌리를 조명하는 ‘우리들의 밥상’ 특별전을 열고 있다. 특별전에는 488건 684。의 유물이 출품된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김치와 관련된 일화가 차고 넘친다. “김장 무김치는 맛있고 밥그릇 쌀은 풍년이다.”(박윤묵의 <존재집>) “흰 밥에 푸른 김치 풍미가 넉넉하다.”(이만수의 <극원유고>) 자그마치 520년 전 인물인 유순(1441~1517)의 시가 심금을 울린다. “산갓김치~매양 미친 듯이 좋아하니 어머니께서 그런 줄을 아시고 정성스레 한 광주리 부치셨네… 이 맛을 나 혼자 맛보기 어려워 … 군자(성담수)의 집에 보내니… ”(<속동문선>)
정성껏 김치를 담가 딸내미, 아들내미 집에 보내는 어머니의 손길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엄마’가 자식 먹으라 정성스럽게 보내주신 김치의 맛 또한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리라. 그뿐인가. 김치를 받은 자식인 그것을 또 이웃(친구)에게 ‘맛보라’고 보냈다. 이렇듯 김치에는 세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맛이 섞여 있다. ‘정(情)’이라는 맛이다.
(이 기사를 위해 이정근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장 등이 도움말과 자료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참고자료>
국립중앙박물관, <우리들의 밥상>(특별전 도록), 국립중앙박물관, 2026
이현태, ‘문헌 자료에서 찾은 옛 음식 문화’, <우리들의 밥상>(특별전 도록), 국립중앙박물관, 2026
김민구·류아라, ‘탄화물 분석을 통한 삼국시대 대두(大豆) 이용방법 고찰’, <한국상고사학보> 제100권, 한국항고사학회, 2018
박채린, ‘한국김장문화의 역사 의미 전개상황’, <김치와 김장문화의 인문학적 이해>(김치학 총서1), 민속원. 2013
이철호 안보선, ‘김치에 대한 문헌적 고찰-김치의 제조역사’, <한국식생활문화학지> 10권 4호, 한국식생활문화학회, 1995
세계김치연구소, <김치 속에 숨은 과학과 문화-똑똑한 김치를 찾아서>, 세계김치연구소, 2015
세계김치연구소, <김치와 김장문화의 인문학적 이해>, ‘세계김치연구소 김치학 총서 1’ , 세계김치연구소, 2013
이기환 히스토리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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